6차산업화와 네식구 농업 |

6차산업화와 네식구 농업

미셀 갈메(Michel Galmel)씨는 이제는 얼굴과 몸짓에서 여유와 친절함이 물씬 풍겨나는 50대 중반의 프랑스 농부이다. 수도인 파리를 섬처럼 감싸고 있는 일드프랑스(Ile de France)지역이 그의 고향이다. 대학 졸업 후 농업엔지니어로 외지에서 일하다가 1990년대 초반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갑작스레 귀향했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국제시세가 강요하는 규모화 경쟁에 무모하게 뛰어들었다가 농장경영에 실패한다. 농업은행(Credit Agricole)의 빛은 늘어만 가고, 급기야 병마저 얻어 농장을 돌볼 노동력마저 잃는다. 일드프랑스 지역은 유럽에서도 최고급 품질의 밀을 생산하는 곳으로 우리가 아는 ‘파리바게트’라는 막대기 모양의 빵은 이곳에서 생산된 밀가루를 원료로 한 것을 최고로 친다. 그의 아버지는 바로 이곳에서 주변 대부분의 농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규모화 경쟁에 나섰다가 파산한 것이다.

30대 초반에 고향에 돌아온 갈메씨는 빛과 함께 상속받은 농장을 둘러보며 많은 생각에 잠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규모화외엔 다른 길이 없었을까?’ ‘많은 농가들이 규모화에 내몰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시장과 국가가 생산비와 적정이윤을 보장해줄 수 없다면, 농업경영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자신의 농장경영 여건을 분석한다. 면사무소에 들러 농장과 마을의 100년전 모습이 담긴 항공사진과 토지대장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이어 1980년대와 현재의 마을의 모습과 토지이용을 비교할 수 있는 자료들을 구한다. 100년전의 농장과 마을의 모습은 무척 아기자기했다. 필지의 규모도, 마을의 길도 지금보단 훨씬 폭이 좁았고, 마을공간은 경지와 숲, 방목지로 구분돼 오랜 세월동안 조화롭게 가꿔졌다. 그러나 1980년대 자료는 확연히 달라진 마을의 모습을 보여준다. 농가수가 대폭 줄어든 가운데, 필지는 규모화되었고, 농업생산은 단작화되었다. 1990년대 초 고향에 돌아온 그가 목격한 마을과 농장의 모습이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국제시세와 연계된 원거리 유통망에 편입돼 가격결정권을 완전히 상실한 채 농가들끼리 규모화 경쟁을 벌이는 것은 농가에게도, 농촌마을에게도 미래가 없는 일이었다. 생산자의 가격결정권을 회복하고, 이를 통해 생산비와 적정이윤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재투자가 가능한 농업경영을 하는 것이 그가 고민 끝에 세운 농장의 새로운 비전이었다.

그래서 그는 규모화대신 ‘다각화의 길(6차산업화)’을 걷는다. 농장의 생태환경을 복원하는 한편, 생산물을 다양하게 구성하고, 다양한 방식의 근거리 유통망(농가장터, 직거래, 직판 등)을 짜서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창의적으로 바꿔나갔다. 농장에 소가공 시설은 물론 농촌관광 체류시설을 도입해 그 자신은 물론, 부인과 자녀 등 가족구성원 모두의 일손을 정기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고향에 다시 정착한지 20여년이 지난 오늘, 그는 30대 초반에 자신이 내렸던 판단과 결정이 옳았음에 뿌듯해하고 있다. 농장과 마을도 점차 100년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규모화에 나서지 않는다고 조롱했던 이웃 농가들도 이제는 그의 농장발전전략에 박수를 보낸다.

필자가 파리에서 학업 중이었던 1990년대만해도 갈메씨 같은 농가는 소수였다. 그러나 현재 에는 갈메씨 같은 농가들이 유럽의 농촌현장 구석 구석에서 쉽게 발견된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농업경영은 한층 다각화되고,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유통망은 짧아지고 있다.

농업경영과 농촌경제에 불고 있는 이러한 변화를 누가 이끌고 있는가? 성인부부와 청년자녀로 구성된 4-5인 규모의 가족노동력을 보유한 가족농들이 그들이다. 1960년대 도입된 유럽공동농업정책과 이를 뒷받침한 농업기본법은 이와 같은 규모의 가족농을 미래 농업구조의 핵심으로 육성하기 위해 농지제도에서부터 가격지지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했다. 오늘날 유럽의 농촌이 아름답고, 농가가 윤택하며, 6차산업화가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역사적으로 축적된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농촌개발과 농촌산업 육성 정책을 통해 농촌경제의 다각화와 6차산업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족농은 배제된 채 마을이나 급조된 공동사업조직들을 사업주체로 내세우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일 것이다. 6차산업화는 농촌지역에 새로운 1-2-3차 연계 소비시장을 창출하는 과정이며, 생산-소비의 관계를 혁신하는 과정이다. ‘생산비+적정이윤’을 확보해야 하는 절박함을 가진 사업단위를 이러한 정책사업의 주체로 내세우는 것이 훨씬 바람직해 보인다. 부부-자녀로 구성돼 어느 정도 가족노동력을 보유하고 있고, 승계구도 형성이 가능한 ‘네식구농업’을 육성하는 것이 어떨까? 뉴-노멀(new-normal) 시대의 ‘저성장-고실업-고령화사회’의 패러다임도 그러한 흐름에 한 몫 할 것이다.

한국농어민신문 농업마당 컬럼(지역아카데미 대표 오현석  201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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