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조직화를 위한 전제조건 |

한국형 조직화를 위한 전제조건

2009-03-06 17:50:04, 박상식

 

최근 들어 우리 농업․농촌에 중요 키워드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조직화’, ‘네트워크화’ ‘규모화’ 라는 용어들이다. 조직화와 규모화는 농산물 유통분야에서 네트워크는 서비스 농업 즉 농촌관광 분야에서 자주 언급된다.
이러한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데는 몇 가지 중요한 배경이 있다. 소매 단계의 유통구조가 대형유통업체들을 중심으로 규모화․체인화 됨에 따라 구매의 안전성을 중시하는 ‘정가․정시․정량․정품질’에 대한 요구가 강화되면서, 산지유통조직들은 이러한 요구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조직화와 규모화를 경쟁력의 핵심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산지가 상품화 수준을 높이거나 홍보력이나 교섭력을 강화하려면 소규모이면서 동시에 다수 농가들의 조직화를 기반으로 한 규모화가 필수적이다.
물론 이런 추세는 유럽 지역의 농업선진국들이 농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추구해왔던 규모의 경제학에 근거한 전략일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농업도 생존과 경쟁을 위해서는 경제학 이론의 철칙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정부가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정책사업의 대부분도 이러한 규모화, 조직화, 네트워크화를 추구하는데 인적․물적 지원을 집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유럽선진국의 경험에 바탕을 둔 경제학 이론과 그 이론에 기초한 정부의 정책이 우리의 농업․농촌의 현장에서 얼마나 기대한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농업․농촌은 공간적으로 마을단위 공동체로서 오랫동안 삶을 영위해왔고, 그런 과정에서 상부상조하는 이웃사촌이라는 관계가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되어왔다. 이들 간의 관계에서는 합리적인 거래관계나 시장관계가 아닌 인간적인 혈연과 전통 그리고 관습이 중심에 있어왔다. 농촌공간은 ‘삶의 공동체’로 자리 잡고 살아온 삶의 터전이자 생활공동체이다. 따라서 긴 세월 한국농촌은 경제적 이익(수익창출)을 내기 위한 사업조직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단지 품앗이, 두레 등의 협동적 관계로 상호 주고받는 경제적 교류가 고작이었다. 또한, 부역을 공동으로 하고, 마을에 경조사가 있을 경우 서로 나누고 돕는 경제적 거래가 개입되지 않는 공동체적 삶으로 공존해온 공간인 것이다.
그런데 농촌공간에 갑작스레 마을단위 및 지역단위의 경제적 사업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은 오히려 전통적인 공동체 조직마저도 붕괴시키는 악영향을 주고 있음이 농촌지역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기초한 조직화와 네트워트화 같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조직을 결성하고 운영해보자는 것은 한 사회와 공동체의 역사적 배경을 인식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노력이 되고 말 것이다.
조직화 및 규모화를 전략적으로 추진기 위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훈련과 준비가 필요하다. 또한, 토론과 회의를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도출 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도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농촌이라는 공간은 이런 경제적 사업모델을 받아들이고 운영하는데 쉽지 않은 특수적 상황을 가지고 있다. 긴 세월의 집단적 촌락형태의 삶은 지역사회를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엉켜져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형태의 생활패턴은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결정하고 사업을 집행하는데 있어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농업․농촌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농촌공간과 그 공간 안에서 살아온 공동체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특성, 한국농촌의 정서, 문화, 역사, 기질 등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반영한 한국형 농촌개발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해야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이 충분히 반영되어진 한국형의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것만이 우리 농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방법이다. 서유럽의 농업과 구조와 역사가 다르고 농업인들의 정서와 인식도 다른 한국이 서유럽의 농업발전의 경험과 모델을 그대로 모방한다면 결코 그들과 경쟁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서유럽농업을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산을 핵심자원으로 삼아 발전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농촌의 역사를 꼼꼼하게 검토해 보기 위해서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의 농촌공간에서 펼쳐진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만족할 만한 관련 자료을 수집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우리 농업농촌의 역사를 연구하는 일이 미래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위한 출발점이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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