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거리 유통망’, 로컬단위에서의 생산과 소비의 재구성 |

가족농 기반의 농업구조에서 산업화를 이루고, 후기 산업사회로 들어선 대부분의 선진국 농정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근거리 유통망’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와 근대화가 진행되기 이전에는 농산물 소비의 대부분은 ‘짧은거리 유통망’ 또는 ‘근접유통망’을 통해 이뤄졌다. 자가소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농산물과 소수의 상업농들이 생산한 농산물들은 대부분 단순한 유통경로를 거쳐 생산지역으로부터 멀지않은 인근지역에서 소비되었다.

그러나 이농과 함께 산업화가 이뤄지고, 도시가 급팽창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상업농이 발전하고, 생산과 가공, 판매유통의 행위자들이 분리되면서, 식품제조업의 발달과 함께 생산과 소비의 관계는 한층 복잡해지고, 그 거리도 멀어져만 갔다. 그만큼 농산물 시장은 지역시장에서 전국시장으로, 다시 글로벌 시장으로 변해갔고, 생산과 소비의 관계는 점점 ‘원거리 유통망’ 속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좌우되어갔다.

지난 근대화시대에 원거리 유통망의 확대와 함께 발전해온 농업의 산업화는 1990년대 이후 ‘규모화’에서 ‘다각화’라는 방향으로 진로를 수정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생산과 소비의 ‘지역화’ 또는 ‘근거리화’가 추진되고 있다. 적어도 가족농 기반의 농업구조를 지속가능한 미래의 농업으로 인식하고, 이를 보호, 육성하려는 강한 정치적, 제도적 기반을 갖춘 나라들이 특히 그렇다. 대표적인 지역이 유럽(EU)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사회발전 모델로 채택하고 있는 EU는 1990년대 이후 친환경농업 육성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농업생산의 탄소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와 함께 푸드 마일리지를 축소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근거리유통망을 육성하고 있다.

EU 공동농업정책을 선도하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에는 이미 2009년에 ‘근거리 유통망 종합대책’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당시 농림부 장관이던 미셀 바르니에는 ‘농업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재창조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제철농산물 소비와 인근지역 농산물 소비를 확대하는데 농정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근거리 유통망’을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중간매개자가 최대 1명만 있는 경우’로 정의하고, 다양한 형태의 직거래망(꾸러미, 농가직판, 농가장터, 순회판매, 통신판매, AMAP, 농촌관광과의 연계 등)을 육성하고 있다. 2009년 ‘농업근대화법’을 통해서는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급식소에서 이러한 직판농산물의 이용을 촉진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와 같은 근거리 유통망이 지역농업생산과 한층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지역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2014년의 ‘미래농업을 위한 법률’이 그것인데, 이 법에서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지역식품계획(PAT, Projet Alimentaire Territorial)이라는 실천수단을 마련하고 있다.

PAT는 지역의 농업생산자들과 관련 공공기관, 연구개발기관, 소비자협회 등 경제주체들, 대형유통매장 등 기업들이 파트너쉽을 이뤄, 생산에서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근거리 유통망의 발전을 촉진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수립, 실천하는 활동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PAT는 ‘지산지소’의 관점에서 지역농업의 생산과 소비의 근거리화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기 위한 ‘분석툴’을 지역농업의 다양한 행위주체들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각종 지역개발사업에 반영해 프로젝트 실천에 필요한 사항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농산물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은 유럽각국은 물론 일본,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농림부의 ‘각국의 근거리유통망 보고서(2009)’에 따르면, 미국의 농가장터의 연매출액이 10억달러(2007)에 달하고, 일본의 경우엔 생산자시장이 14,000개소로 확대되고 있으며(2005), 독일은 전체 농가의 6-8%가 직판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네덜란드에선 ‘시골친구들’, ‘농촌가게’ 등의 명칭을 갖는 직판조직이 조직화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에선 농림부와 소비자협회가 공동으로 품질관리규약을 제정해 농가직판장을 대상으로 ‘우수농산품 공동브랜드사업’을 펼치고 있다.

프랑스의 올랑드 사회당정부는 2017년까지 공공급식의 40%를 근거리유통망 조직을 통해 조달하고, 이중 20%는 유기농산물로 식재료를 구입하는 계획을 실천중이다. 이를 통해 매일 1천만명에 달하는 인구에게 인근지역에서 생산된 친환경 제철농산물을 소비하는 습관을 형성토록 한다는 것이다. 이태리의 베네치아에서는 공공급식의 30%를 지역농산물로 조달하기 위한 법률이 통과됐으며, 독일에서도 사민당과 보수당은 공공급식의 재구성에 대해 이미 합의를 이룬 상태이다.

농산물 소비시장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의 보다 많은 부분을 생산자에게로 되돌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야말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농정의 중요한 과제이다. / 끝.

이글은 한국농어민신문 농업마당 컬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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