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층이 두터운 유럽의 가족농 |

중간층이 두터운 유럽의 가족농

 

유럽의 농가들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유럽농업을 이해하는 핵심코드는 ‘가족농’일 것이다. 말 그대로, 두 부부와 자녀들이 한 가족을 구성하면서, 현대화된 농업경영을 이끌고 있다. 대게의 경우 농가의 자녀들 중 한 명은 농업계학교로 진학해 승계준비를 한다.

 

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위치한 40대 중반의 티에르씨 부부.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에 다니는 세 자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이 지역의 다른 농가들처럼 낙농과 함께 밀을 생산한다. 영농규모는 약 100ha 정도. 평균면적이 1.5ha에 불과한 우리 현실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임에 틀림없으나, 소득은 그리 엄청난 규모가 아니다. 그가 조심스럽게 밝히는 농업소득 규모는 대략 1억 5천만원 정도. 그런데 이 중에서 6천만원 정도가 직불금 소득이란다. 공교육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어, 우리처럼 사교육비 가 가계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정도의 소득 수준이면 유럽에서도 중산층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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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똥마을 할아버지 : 규모화보다는 경영다각화를 통해 지역사회와 보다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했다는 은퇴를 앞둔 프랑스의 한 농업인. 1980년대부터 해온 자신의 이와 같은 주장이 오늘에 있어 옳았음을 역설한다.

티에르씨는 물론 전통 농업계 학교 출신이다. 고등학교에 이어 전문학교도 농업계 학위과정을 거쳤다. 마담 티에르씨는 아동학을 전공한 도시출신의 여성이지만, 남편과 결혼하면서 처음엔 육아에 전념하다가, 최근엔 남편 일을 새로운 차원에서 돕기 시작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농업에 교육을 접목한 교육농장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남편의 일터가 자신에게는 교육의 장이 된 것이다. 세 자녀 중 둘 째 녀석이 이 농장을 승계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다른 두 자녀는 공동상속자로서 법인화된 경영체의 지분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유럽 전역에 널려 있다. 가족농다운 인력구조, 안정된 소득, 경영 다각화, 법인화를 통한 승계구도 등 독일 헤센주에서 만난 농가도, 네덜란드 암스텔담 인근지역에서 만난 농가도 유럽 가족농의 모습들은 유사함이 많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지속가능한 가족농이 우선인 개념처럼 보인다.

사실 예전엔 토지와 자본, 노동력이 가족을 단위로 삼위일체식으로 조직화돼 농업생산이 이뤄지는 ‘가족농’ 모델이 유럽농업의 보편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적어도 1950년대까지의 유럽 농촌은 대지주, 대농, 중농, 자작농, 소작농, 농업노동자 등 다양한 사회계층이 농업생산을 둘러싸고 토지와 노동, 잉여의 분배문제를 놓고 복잡한 관계가 형성된 구조였다.

오늘날과 같은 가족농모델이 새로운 차원에서 전 유럽에 창출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1950년대 전후복구에 이어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이농현상으로 인한 농촌사회의 해체로부터 새롭게 확보해야 할 새로운 농업구조로서 가족농모델이 강력히 추진된 것이다. 유럽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나라가 프랑스이다.

 

1960년 기본법농정과 새로운 가족농 모델

프랑스는 전후 복구과정에서 미국에 의존하는 마샬플랜을 극복하기 위해 농업근대화에 박차를 가한다. 프랑스 농업을 이끄는 ‘4륜마차(voiture à 4 roues)’로 비유되는 농업직능조직(협동조합, 농업은행, 농업사회보장기구, 농민단체)을 중심으로 농업근대화를 강력히 추진하는 한편, 청년영농인 교육, 기술교육 및 기계화교육 등 농업근대화를 위한 연구개발 및 인력육성을 강력히 추진한다.

프랑스 농업을 현재의 가족농구조로 전환한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는 1960년의 농업기본법이다. 1957년 로마조약에 따른 유럽경제공동체 창설을 계기로 프랑스 농업계는 큰 고민에 빠진다. 유럽차원의 시장개방 국면에서 프랑스 농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가 고민의 핵심이었다. 프랑스 농업계와 정부는 유럽 공동농업시장 창설에 대비해 프랑스 농업을 새로운 차원에서 이끌고 갈 주력층으로서 가족농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한편, 이들을 기반으로 프랑스 농업의 대외경쟁력 강화를 위해 새로운 제도적 기반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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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경영주의 연령분포로 본 프랑스의 농업구조. 왼쪽이 남자, 오른쪽은 여자이다. 35세에서 55세 사이의 연령대가 두텁게 형성돼있다.

1960/62년의 농업기본법은 배우자로 구성된, 성인노동력 두 단위의 농업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현대화된 가족농 육성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 농지 등 농업생산자원이 이들에 의해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농지제도를 혁신한다. 임차인의 권리를 거의 토지 소유자에 준한 것으로 대폭 강화하는 한편, 보다 젊고 훈련된 영농후계인력들이 농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책들을 도입한다(고령농 조기은퇴제, 직업전환프로그램, 청년영농정착지원 등 도입).

35세 미만의 영농후계자들로 구성된 전국청년농업인연맹(CNJA)은 이러한 가족농 모델을 프랑스 농업의 새로운 농업구조로 정착시켜 나가기 위해 정부와 강력한 농정파트너쉽을 형성하고, 농정의 공동관리자(Cogérant)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나간다. 이들은 ‘선택한 직업’으로서의 농직업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가족농 경영모델이 비농업부문 직업과의 사회적, 경제적 균형을 담보할 수 있도록 구조정책에 필요한 시책들(최소정착면적, 농지축적금지 등)을 농업기본법의 주요 내용으로 담아야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농지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농지관리을 전담하는 새로운 기구(SAFER의 선매권, 농지시장정보 통합관리 등)의 설치를 정부에 요구한다.

농업기본법 시행과 함께 개신된 유럽공동농업정책은 프랑스 가족농 모델의 자양분이자 보호막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공동농업정책은 밀 등 주요농산물에 대한 가격보장, 품목별 공동시장조직 육성, 과잉농산물 관리를 위한 수출보조 정책을 통해 대내적으로는 농산물 판로를 보장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역내 농업시장을 보호했다. 이러한 양호한 환경 하에서 프랑스의 가족농은 생산규모와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새로운 투자(기계화, 시설확대, 자동화 등)를 통해 현대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이 시기의 농업발전 모델을 ‘생산주의 모델’(le modèle productivist)이라 불리며, 농업부문과 비농업부문 간 소득균형, 농촌지역의 삶의 질 향상, 농촌인프라 구축, 핵가족 중심의 가족경영체의 성장, 농업임노동의 축소 등 프랑스 농업구조와 농촌사회는 ‘구 프랑스 농촌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되었다.

 

산주의 모델의 위기와 경영다각화를 통한 가족농의 새로운 활로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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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농업을 현재의 가족농구조로 재탄생시킨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농민단체의 힘이다. 특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서의 직업’이 아니라 ‘선택한 직업’으로서 농업을 강조한 ‘청년농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프랑스 농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생산주의’ 농업발전 모델은 보다 높은 수준의 생산성 구현을 위해 농가간, 지역간 경쟁을 한층 격화시켰다. 그 결과 농업부문 생산성은 타부문에 비해 빠르게 상승했으나, 국내외적으로 농업생산이 과잉공급 국면에 들어서면서 농산물가격은 하락추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러한 하향추세가 지속되면서 시장에서 농업 부가가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졌다. 한편, 규모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 경쟁은 농지확보를 위한 농가간 경쟁을 격화시키면서 농지가격을 지속적으로 상승시켰다. 도시근교지역의 경우에는 주거지 확보와 도시인프라 확충을 위한 개발수요가 겹치면서 농지에 대한 접근성이 한층 악화됐다. 기존의 방식대로 생산주의 모델에 입각해 가족농이 진화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신규 영농정착자들의 농지 접근성 문제는 한층 심각해 졌다.

유럽공동농업정책은 1980년대 이후 가격지지 정책에서 서서히 후퇴한다. 1984년 우유생산쿼터제가 도입되고 1986년 미국과 UR협상을 본격화하면서, 예전과 같은 ‘생산주의 모델’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 1992년 공동농업정책 개혁은 의무휴경제의 도입, 초지 장려, 조방적 농업 장려 등을 통해 생산과잉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생산가격 지지 대신 소득보전 직불제를 도입하면서 생산중립적인 농업정책으로 선회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 말에 발생한 광우병 사태를 계기로 정부의 농업지원 방식과 그간의 생산주의적 농업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이 높아지면서, 디커플링과 함께 단일직불제가 도입되며, 이후 공동농업정책에 대한 농가소득 의존도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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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가족농들은 가공과 관광분야로 경영다각화를 이루면서, 농업승계는 물론 농촌지역경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프랑스 농업과 농촌은 1950년대에 설계된 ‘사회와 농업간의 협약(농업기본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인식하게 된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난 농촌지역의 인구사회학적 재구성은 도시근교 지역에서 점차 농촌 내부로 확대되었으며, 농촌공간을 이용하는 방식도 과거 농업생산 위주에서 거주와 휴양, 환경보호 등으로 다양한 사회적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농업생산양식 또한 유기농, 계약농업, 정밀농업 등으로 다변화되는 한편, 농가의 농산품 판매방식도 근거리 유통(직판, 직거래 등)이 확대되면서 산업적 유통(원거리 유통)과 병행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상의 내용은 앞서 사례를 든 피에르씨 가족의 오늘을 있게 한 배경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적 규모로 진행된 산업화는 가족농의 해체를 전제로 한 것이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근본적인 차이는 가족농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에 있다. 개발도상국들이 산업화과정에서 가족농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해체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면, 선진국들은 가격정책을 통해 농업노동을 보상하면서 이농속도를 조절하는 한편, 현대화된 가족농을 중심으로 새로운 농업구조를 준비해왔다. 그러한 가족농이 이제 소위 6차산업화의 진행과 함께 농업활동을 2,3차 경제활동과 기타 사회 및 문화활동과 새롭게 결합하면서, 농촌지역에 새로운 풀뿌리 경제망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오현석, 한국FAO협회 2014 신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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