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다울 수는 없을까? |

작은 것이 아름다울 수는 없을까?

2009-03-13 11:30:52, 유능수

 

얼마 전 함께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지겠다는 왕성한 의욕을 가지고 대학생활을 동고동락 하다가 1년 만에 함께 때려 치웠던 친구놈을 만났다. 친구놈이 영화진흥위원회에 갔다가 우연히 ‘한국영화 제작활성화’와 관련한 사업추진 상황을 들었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억 원 규모의 현물투자를 하고, 영상투자조합이 편당 3억 원씩 부분 투자하는 방식으로 모두 10편의 영화 제작을 지원한다는 게 골자였다.
투자 분위기가 얼어붙어 기획 개발이 끝났음에도 크랭크인을 못하고 있는 작품들에 윤활유를 쳐 굴러가게 만들자는 계획이다. 위원장은 “10편이 촬영에 돌입하면 편당 제작 인원을 100명씩만 쳐도 1천 명의 영화인들에게 일거리가 제공된다.”고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막상 추진이 용이하지 않다”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사업의 추진이 원활하지 않은 이유는 영화계의 투자관행상 메인투자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분투자를 먼저 지원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고, 30~40억 원 이상의 제작비 규모로 기획된 영화들에 당장 5억 원 정도의 투자지원으로는 프로덕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만큼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보았다. 우선 프로젝트의 지원 대상을 좀 더 명확하게 목표화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10억 원 안팎 자금으로 제작할 수 있는 이른바 “저예산 영화”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와 영상투자조합이 합자한 5억 원 정도의 투자지원에 약간의 추가 투자만 있다면 영화를 한번 만들어 볼만한다.
이런 의견을 친구놈에게 이야기하니 이러한 대안을 주장 하지 아니하여 본 것은 아니라며 이 의견에 대해 영진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저예산 영화의 기본 관객 동원 규모가 채 2천 명에도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영상투자조합들이 과연 투자 리스크를 감수하려 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한다. 그의 문제 제기는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맞다. ‘저예산 영화=예술영화=지루한 영화=관객 안 드는 영화’라는 등식을 전제로 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실제로 공적 지원에 힘입어 만들어진 적지 않은 저예산 영화들은 이러한 등식에 들어맞았다. 조금 냉소적으로 말한다면 그 과정에서 시나브로 ‘다양성영화’는 우리에게 다양성이 있음을 자족적으로 확인시키고, 확산되지 못한 채 협소한 게토에서 소비되고 마는 일군의 영화들을 일컫는 대명사가 되다시피 했다.
돈을 적게 들이고도 충분히 장르적인 재미를 안겨주는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10억 원 안팎의 예산으로 대중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작품을 창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많은 영화인들이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최근 <고사: 피의 중간고사>나 <영화는 영화다> <미쓰 홍당무> 등을 통해 그런 실증을 접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금의 한국영화 위기를 돌파할 새로운 키워드로 ‘저예산 대중영화’라는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결국 이것은 ‘다양성’이라는 기치 아래 다시 굳건히 뭉치자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라,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만이 아닌 구멍가게도 같이 먹고살자는, 일종의 한국영화 생존운동 차원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마트가 아닌 동네 슈퍼에서 가끔 아주 기막히게 맛난 과일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돈이 적게 들어간 영화라도 기가 막히게 차진 이야기를 만날 수 있고 대중과의 접점도 넓힐 수 있음을 확인해보자는 얘기다. 무엇보다 영화인들이 밥을 먹도록 카메라가 당장 돌아갈 수 있는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을 내보자는 얘기다.
물론, 막상 만들어진다 해도 ‘저예산 영화=흥행 안 되는 영화’라는 시장적 편견은 극복해야 할 숙제다. 대규모 영화에만 유리하게 되어 있는 배급 환경도 걸림돌이다. 그러나 당장 내년에 극장에 내걸려야 할 적정 영화편수조차 보장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저예산 대중영화는 가장 효율적으로 시장 흐름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원스>나 <주노>와 같은 흥행 사례가 한국영화에서는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혹자는 명색이 문화의 첨병임을 자임하는 영화계에서 종사자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너무 따지는 게 아름답지 못하다고 말한다. 거꾸로 다들 먹고살기 힘든데 영화계만 앓는 소리를 하는 게 마땅치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허나 그건 하나만 아는 소리다. 감독과 배우, 스탭들이 지금의 혹한기를 딛고 생존할 수 있느냐 그들의 잠재된 재능이 묻히지 않고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느냐는 분명히 우리의 문화 환경에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친구와 소주 한잔 기울이며, 수다처럼 떠들어 댔던 사적인 얘기를 구구절절하게 서술해 놓은 것은 우리 농업 현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이다. 농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로서는 거창한 전문용어로 우리나라 농업의 현실에 대해 논평하기는 어렵지만 지나치게 규모화를 추구하고 거대자본의 동원만이 경쟁력이라는 주장의 이면에서 우리는 또 다른 측면에서의 경쟁력을 찾을 수는 없을까?
요즘 유럽에서는 대형유통업체의 전성기가 지나가고 다시 동네구멍가게가 뜬단다. 심지어는 까르푸도 구멍가게 장사를 시작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로드샵’ 이란 이름으로 아파트 단지 입구를 점령하기 전략이 등장한다.
오늘 당면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고통이라는 단어만 떠올리기 보다는 기존에 얽매어 있던 고정관념을 깨쳐보는 기회로 삼을 수는 없을까? 사과는 반드시 커야하고, 산지유통조직은 반드시 규모화 되는 것이 불변의 법칙은 아니지 않는가? 작지만 다양한 맛과 색상의 사과, 작은 조직이지만 비용을 적게 들이고도 알찬 가치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대마불사라는 주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미국의 거대기업들의 파산소식을 들으면서 허구가 되고 있다. 이제부터는 작은 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가치를 만드는 일에 우리 농업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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