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부가 농업을 더 챙겨야 되는 것 아닌가? |

보수정부가 농업을 더 챙겨야 되는 것 아닌가?

지금도 어렸을적 경험한 개구리의 '그 평온했던 죽음'을 잊을 수 없다.

학교 방학숙제가 양서류인 개구리를 해부해 뼈대를 조립해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개구리를 잡을 엄두도, 그것을 죽여서 해부할 용기도 없었던 나는 다행히도 큰아버지댁이 있는 시골 동네에서 그 일을 대행해줄 친구를 구할 수 있었다. 그 친구는 통조림 빈 깡통에 물을 넣고 포획한 개구리를 넣은 후 불로 살살데우더니 잠시 후 삶아진 상태로 바뀐 개구리를 내게 보여줬다. 그렇게 개구리 해부 여름방학 숙제는 쉽게 마무리됐다. 그 개구리는 어떻게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갈 물의 온도변화에 그렇게도 무감각할 수 있었을까? 뚜껑이 닫힌 것도 아니어서 한번쯤 튀어나오려는 시도를 했었을 수도 있었을텐데…개구리는 그렇게 해부하기 좋은 상태로 변해갔다.

한국농업이 위기라는 진단은 어느새 철지난 타령이 되고 만 것인가? 세계3대 거대경제권과의 FTA(한미, 한중, 한EU)가 모두 체결되고, 그보다 더 큰 충격이 예상되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몰려올 조짐인데도 농업문제에 대한 우리사회의 여론은 맹하기만 하다. 쌀 수입개방 시대를 연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직후나, FTA 시대를 연 2004년 한칠레 FTA 직후만 해도 '48조원' 또는 '119조원' 종합대책으로 떠들썩했던 것과는 달리 잇따른 FTA 체결로 관세철폐 내지는 점진적 관세인하 효과가 국내시장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요즘, 정작 있어야할 웅성거림이 없다. 그만큼 정부대책이 보다 완벽한 형태로 진화해서일까? 이러한 와중에 간간히 들려오는 농업보조금 편취 소식이나, 농협조합장 선거비리 소식 등은 농업문제에 대한 정당한 의제설정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다. 개구리의 무감각이 우리 사회와 농업계에도 번진 것일까?

한국농업이 대응해야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대책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설계가 필요하다. FTA 등 농업시장 여건 변화는 물론, 인구절벽과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 저성장과 귀농귀촌 인구의 증가, 기후변동, 농업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등 우리 농업의 미래는 분명 새로운 설계를 필요로 하고 있다. 누가 설계하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유럽 최대 농업강국 프랑스의 농업근대화 과정은 농업구조를 성공적으로 전환한 모범사례에 속한다. 한 국가의 농업의 미래를 놓고 농업계의 치열한 미래구상과 이를 실천할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준비가 체계적으로 이뤄진 사례는 필자가 알기론 프랑스가 거의 유일한다.

프랑스 농업의 미래구상은 청년후계농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농직업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서가 아니라, 선택한 직업'으로서 국가가 대우할 것을 요구했다. 2인 부부중심의 성인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가족농 모델을 미래 프랑스 농업구조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직업간 형평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국가에 당당히 요구했다. 농지제도를 이용자 중심으로 바꾸고(임대차 계약은 9년이 기본이다), 최저임금제도의 취지에 맞게 농업부문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 소득확보가 어려운 규모 이하로는 농업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막았다. 토지를 보유하고 있어도 적정규모의 농업구조 유지를 위해 경작권을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농지는 선매권을 가진 농지은행(SAFER)을 통해 가족농 모델을 실천할 수 있는 농가들에게 우선적으로 배분됐다. 사회보장에 있어서도 연금, 건강, 실업, 상해 등에 있어 비농업부문과 동등한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었다. 가족농이 가진 구성원들의 애매한 법적 지위로 인해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를 없애 나갔다.

프랑스 농업의 미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정치세력은 우파정부를 이끈 샤를 드골(De Gaulle)대통령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중 자유 프랑스 운동을 이끈 지도자이자 군사 전략가로서 1959년에 프랑스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오른 드골은 프랑스 청년농업계의 미래구상을 농업기본법을 통해 제도화하고, 전국청년농업인연맹(CNJA)과 함께 강력한 농정파트너쉽을 형성해 농정을 공동관리(Cogérant)한다.

1960/1962년의 농업기본법은 당시로서는 미래 농업의 설계도였다. 배우자로 구성된 2인 성인노동력을 근간으로한 가족농 모델이 공동농업정책으로 인한 농업시장 개방국면에서 농업의 수익성과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판단하고, 농지제도, 농업인력 육성, 가족형 법인농 육성, 협동조합 등 농업직능조직, 농지제도, 농업구조정책, 시장조직 등 농업활동에 관한 모든 것을 혁신해 나갔으며, 동시에 산업화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이농의 속도를 조절해 나갔다. 후일 프랑스 국경을 넘어 유럽 차원의 공동농업정책으로 확대된 청년영농정착 지원 등 많은 시책들이 당시에 도입된 것이며, 전략 농산물에 대한 가격보장, 품목별 공동시장조직 육성, 과잉농산물 관리를 위한 수출보조 정책을 통해 대내적으로는 농산물 판로를 보장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역내 농업시장을 보호하는 정책이 강력히 추진됐다.

1960년 이후 프랑스 농업은 생산규모와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상업농의 약진, 지역 및 전국시장의 활성화, 농업시장의 국제화, 농업부문의 투자 확대(기계화, 시설확대, 자동화 등)가 빠르게 진행됐다. 이로써 농업부문과 비농업부문 간 소득균형, 농촌지역의 삶의 질 향상, 농촌인프라 구축, 핵가족 중심의 가족경영체의 성장 등 프랑스 농업구조와 농촌사회는 ‘구 프랑스 농촌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됐다.

프랑스 농업을 이끈 ‘4륜 구동(voiture à 4 roues)’이라 불리는 각종 농업기구 또한 그 역할을 혁신하면서 프랑스 농업의 새로운 탄생에 기여해왔다. 조합 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 농업사회보장기구(MSA) 등은 주류 농민단체의 농민적 지배 전통 하에 이러한 변화를 견인해왔으며, 농업회의소는 변화하는 프랑스 사회 속에서 농업계를 넘어 농촌계를 대변하면서 농촌의 변화를 이끌었다. 젊고 깨어있는 프랑스 농업계 내부의 민주주의 전통과 축적된 역량이 프랑스 농업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이다.

한국농업의 미래 설계도는 어디에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대게 우파 보수 정권들이 자국 농업을 보다 알차게 챙기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도 지금 보수 우파 정권을 2017년까지 10년째 예약하고 있지 않은가? 자잘하고 이벤트적인 대응책에 실망하고, 정밀한 구상과 확실한 추진력을 기다리다 지쳐 우리 농업계가 '무감각'해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농민단체가 주최한 행사에서 '농업을 시장논리에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고 공언한지 얼마 안되어 집권 후에 농업계의 목소리를 외면한 현 정권의 분발이 요구된다.

 

한국농어민신문 농업마당(지역아카데미 대표 오현석 201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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